전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7. 17. — 2015. 1. 21.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1층, 2층
참여작가
로렌조 비안다, 솜폿 칫가소른퐁세, 엑소네모, 하룬 파로키, 핑거포인팅워커, 폴 게린, 모나 하툼, 윌리엄 켄트리지, 김태윤&윤지현, 이부록, 리즈 매직 레이저, 질 마지드, 뵤른 멜후스, 옥인 콜렉티브, 백남준, 리무부 아키텍쳐, 송상희
기획
안소현, 이수영
위성으로 강자의 자유를 증대시킨다 함은 곧 약자의 자유를 보호하고 다양한 문화들 사이의 질적 차이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 백남준, ‘예술과 위성’ (1984)
조지 오웰은 1949년 원거리 통신을 이용한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 된 암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발표하면서, 1984년이 되면 매스미디어가 인류를 지배하리라는 비관적인 예언을 하였다.
백남준은 이 예언에 대해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하면서, 예술을 통한 매스미디어의 긍정적인 사용을 보여주기 위한 위성 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하였다. 1984년 1월1일, 백남준은 뉴욕과 파리를 위성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연결했다. 이 생방송을 위해 4개국의 방송국이 협력했고, 30여팀, 100여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대중예술과 아방가르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 미술, 퍼포먼스, 패션쇼, 코미디를 선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다채로운 예술들을 합성하여 한 TV 화면 속에서 만나게 하였다. 이 방송은 뉴욕과 파리뿐만 아니라 베를린, 서울 등지에 생중계되었으며, 약 2천5백만 명의 TV시청자가 시청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4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30주년을 맞는 해로, 이 긍정의 축제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눈을 들여다 보아야 할 시점이다. 오늘날 위성을 넘어 인터넷을 이용한 글로벌 네트워킹 시스템은 더 강한 통제와 더 넓은 자유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이 전시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은밀해지는 통제/자유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술이 이 네트워크를 변화시킬 새로운 노드와 링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묻고자 한다.
주관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생방송 위성 텔레비전 쇼였다. 뉴욕에서 로리 앤더슨, 앨런 긴즈버그, 샬의 진행 아래 사포, 요셉 보이스, 어반 삭스 등이 공연했다. 생방송에서는 두 진행자가 뉴욕과 파리에서 잔을 롯 무어먼, 톰슨 트윈스 등이 진행자 조지 플림튼과 함께 생방송 공연을 펼쳤고, 파리에서는 끌로드 비레부딪치며 건배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공연을 서로 메기고 받는 쌍방향의 피드백을 만들기도 하고, 뉴욕과 파리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여러 공연들을 한 화면에 녹여서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전시에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퍼포먼스가 지닌 동시적이고 쌍방향적인 특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요 퍼포먼스의 비디오를 한 공간에 나열하여 보여준다.
조지 오웰 아카이브
리무부 아키텍쳐, <싸이놉티콘>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감시할 수 있는 감옥의 형태로 고안된 파놉티콘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피감시인의 ‘심리’이다. 감시인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불안과 그로 인한 자기규제는 가장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 되며, 이 파놉티콘의 원리는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서 파놉티콘의 패턴을 만든다. 평범한 사물의 형태가 동심원의 형태로 반복되면서 생긴 이 패턴 속에 들어선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시인이 되기도, 피감시인이 되기도 한다.
핑거 포인팅 워커, <후쿠이치 라이브 캠을 가리키다>
‘핑거 포인팅 워커’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작가로, 이 영상은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도쿄 전력에서 인터넷을 통해 현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해 설치한 ‘후쿠이치 라이브 카메라’의 영상을 녹화한 것이다. 작가는 그 현장에 가서 원전 노동자의 복장을 하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나르시시즘의 대표적 작품으로 불리는 비토 아콘치의 작품 «센터»를 패러디한 제스처를 취했고, 이 장면을 다른 작가(코타 타케우치)가 영상으로 기록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공격적이면서도 나르시시즘적인 제스처를 통해 위기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원전의 위험성을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또 그들의 희생을 영웅시하는 상황을 비판한다.
모나 하툼, <너무나 말하고 싶다>
무언가 말하려는 작가의 입을 남성의 손이 틀어막고 있다. 영상은 느리고 끊어지지만, 제목을 반복해서 말하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린다. 이 영상은 퍼포먼스를 ‘슬로우 스캔’이란 기술을 이용해서 기록하고, 그 이미지를 인공위성을 통해 다른 곳으로 전송한 것이다. 슬로우 스캔을 하면 이미지는 매 8초 마다 전송되지만, 소리는 전화선을 통해 끊어지지 않고 전달된다. 작가는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연속적인 소리를 함께 먼 곳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이용하여 억압되고 제한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저항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이부록, <워바타 스티커 프로젝트>
‘워바타’는 ‘전쟁’(War)과 ‘아바타’(Avatar)의 합성어로, 단순 명료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으로 되어있다. 작가는 2005년 부터 현재까지 워바타의 픽토그램을 스티커로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거나 우편으로 보낸 후, 기존의 기호나 이미지에 스티커를 붙인 뒤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하는 스티커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비극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일상이 되고, 그것이 대량복제가 가능한 자본주의적 소통매체인 스티커가 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소소함 가운데 섬뜩함을 불러온다. 하지만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에 워바타 스티커를 붙여서 만들어낸 이미지들과 그것들이 작가에게 되돌아와 쌓이는 과정은 번뜩이는 풍자와 참여의 힘을 확인하게 한다.
김태윤&윤지현, <헬로, 월드!>
김태윤&윤지현은 전시개막에서 다양한 경로로 수집된 정보들을 통제하여 시각화하는 메타 데이터 퍼포먼스 «헬로, 월드!»를 선보이고, 그 과정이 전시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플랫폼을 열어둔다. 작가들은 모두가 각자의 채널을 지니게 된 오늘날 ‘빅 데이터’의 양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들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가 공유되며 통제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그 정보들을 관객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뵤른 멜후스, <살인적인 폭풍>
뵤른 멜후스는 텔레비전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분장을 하거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전형적인 기법들을 이용하여, 매스미디어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들을 표현한다. 이 영상에서는 긴박함을 강조하기위한 말과 소리를 반복적으로 편집하여 음악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처럼 매스미디어가 대중들의 심리를 조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여러 기법들을 비판적으로 파헤치는 한편, 스스로 텔레비전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세대임을 자처하면서 텔레비전의 요소들을 적극 활용한다.
송상희, <그날 새벽,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송상희의 카메라에 담긴 도시의 모습들은 익숙하면서도 비현실적이고, 이상향을 그리는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는 불완전함을 갖고 있다. 이 비현실적인 영상 위에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등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가져온 문장들이 겹쳐진다. 이와 함께 메시앙의 음악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가 흘러나오고, 드로잉 위로 움직이는 조명을 통해 이제는 사라진 것들과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며 만들어낸 것들이 꿈의 장면들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리즈 매직 레이저, <PR(공적인 관계들)>
리즈 매직 레이저는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고, 영화관이나 길거리 인터뷰, 혹은 방송 녹화와 같은 현장에 퍼포머들이 개입하여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도록 한다. «PR(공적인 관계들)»은 뉴스를 위한 거리 인터뷰 상황을 카페에 앉은 한 남자가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는 일종의 포스트 드라마로서, 저널리즘과 그 메커니즘이 대중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퍼포먼스와 비디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엑소네모, <수퍼내추럴>
셈보 켄슈케와 아카이와 아에로 이루어진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엑소네모는 1996년부터 넷 아트, 사운드 비디오 프로세싱,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라이브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으로 다양한 미디어 확장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수퍼내추럴»은 전시공간과 일본에 있는 작가 스튜디오를 인터넷으로 연결하여 디지털과 아날로그, 가상공간과 실재 공간,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기술,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를 실험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하룬 파로키, <카운터-뮤직>
하룬 파로키는 이 영상에서 영화사의 고전인 지가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패러디 하여, 오늘날의 도시와 영상매체의 관계를 보여준다. 영상에 나타나는 유럽의 여러 도시들의 모습은 각종 감시 카메라와 도시설비 및 교통체계 관리 등을 위해 촬영한 기능적인 영상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작가는 이런 기능적인 영상들을 리드미컬하게 편집하고, 그 위에 도시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사회 네트워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등을 보여주는 문구들을 덧입혀 한편의 영상 에세이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