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기술, 백남준답게
백남준의 여든아홉 번째 생일을 맞는 올해 백남준아트센터의 표어는 “다정한 기술, 백남준답게”입니다. 미술과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예술과 기술의 생태계에서 미디어 아트 미술관으로서 또렷한 경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백남준이 비디오, 위성, 레이저 같은 당시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여 미술의 매체로 사용했던 것은 비단 예술적 실험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기술이 예술을 바꾸고 그래서 그 예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백남준은 확고히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세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건네는 예술, 여기에 가장 요긴한 기술의 쓰임새를 찾아 나가는 예술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백남준은 “평화에 진력이 날 만큼 충분한 평화를 원한다”며 “세계평화”를 위한 예술이라는 야심만만한 포부를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전 지구를 상대했던 백남준의 예술과 기술은 또한 매우 명랑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기술의 과학적 작용을 예술에 접목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고 세밀했지만, 그 예술과 기술로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때면 백남준은 유쾌한 기운으로 가득했습니다. 함께하는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함께 가꾸고 영유하며 얻는 공통의 감각, “공생공락”의 가치를 길러내는 곳이 되고자 하는 백남준아트센터는 지금의 기술을 백남준처럼 생각하고 백남준처럼 다루는 길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메타버스, 대체 불가능한 토큰처럼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기술을 예의 주시하면서, 그 기술이 예술과 만날 때에만 비로소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변화의 물방울들로 곁의 이웃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이 되는 내년이면 백남준아트센터의 곁은 더욱 넓어지고 다양해질 것입니다.